icon 충북인뉴스 페이스북&트위터 친구가 되어주세요.
상단여백
HOME 정치·행정 비석이 가루가 될 때까지 잊지 말자. 그 이름 친일
태극기는 펄럭였지만…일제면장 공덕비는 우뚝음성금왕읍‧진천덕산면, 삼일운동 100주년 기념 태극기 장식
정작 사무소부지 조선총독부 면장 공덕비는 존재 조차 몰라
충북 음성군 금왕읍사무소는 삼일절 100주년을 맞아 청사 주변을 온통 태극기로 장식했다. 하지만 청사내에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면장을 지낸 두명(d왼쪽 김낙성, 오른쪽 이준성)의 공덕비도 여전히 존치하고 있다.
충북 진천군 덕상면사무소는 삼일절 100주년을 맞아 청사 주변을 온통 태극기로 장식했다. 하지만 청사내에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면장을 지낸 이계창의 공덕비도 여전히 존치하고 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서 그런지 올해는 그 어느때보다도 기념식이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충북 음성군 금왕읍사무소와 진천군 덕산면사무소는 사무소 부지 일대를 태극기로 장식했습니다.

사무소에 있는 나무에는 소형태극기가 걸렸고 바람개비 태극기까지 게시됐습니다. 특히 음성군 금왕읍의 경우 넓은 부지 전체를 태극기로 장식해 탄성이 나올 정도로 규모가 큽니다.

금왕읍은 일제강점기 시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금광이 있던 곳입니다. 지금은 금광이 모두 문을 닫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한참 성업 중일 때는 강아지도 금이빨을 하고 다닌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오던 지역입니다.

진천군 덕산면도 충북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날로 규모가 커지고 있는 곳입니다. 현재 인구 2만명을 넘어 읍 승격의 기본 요건을 갖췄습니다.

분명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두 기관에 설치된 태극기를 보면서 시민들은 큰 자긍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또 읍‧면 공무원 분들의 3‧1운동을 기리고자 하는 마음도 충분히 전달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운치 않은 뒷모습도 있습니다. 온통 태극기로 장식된 금왕읍사무소 뒤편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 면장으로 임명된 두 명의 공덕비가 우뚝하니 자리잡고 있습니다.

공덕비의 주인은 1920년부터 1923년까지 금왕면장으로 재직한 김낙성(金樂性), 1931년부터 1937년까지 면장을 지낸 이준성(李竣成, 1890~) 입니다.

일제하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의 보도에 따르면 이준성은 우량면장으로 선발돼 내지시찰단에 선발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내지’(內地)는 일본이 제2차세계대전 전 그들의 본토를 부르는 말입니다. 일제는 그들의 해외식민지를 ‘내지’와 구분해 '외지(外地)'라 불렀습니다.

1919년부터 1929년까지 충북 진천군 덕산면장을 지낸 이계창(李啓昌)의 공덕비도 태극기가 걸려있는 덕산면사무소 한켠에 우뚝하니 솟아 있습니다.

이계창은 무려 11년 동안이나 조선총독부의 면장으로 장수한 인물입니다.

 

음성‧진천군 ‘송덕비 없다’ 답변

 

음성군과 진천군은 두 기관에 일제강점기 면장의 공덕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요? 음성군은 본보가 청구한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일제강점기 시절 군수나 읍장과 관련된 (비석에 새겨진) 금석문에 관련된 정보가 없으므로 정보(가) 부존재”하다고 답변했습니다.

또 음성읍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읍장의 사진이 걸려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나머지 음성군 소재 면사무소의 경우에는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음성군의 답변에 따른다면 각 읍면사무소에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임명한 읍면장들의 공덕비 유무에 대해 군이 알지 못한다는 것이겠죠.

조선총독부 및 소속관서 직원록에 따르면 1919년부터 1932년까지 조동환(趙東渙)이라는 인물이 음성군 음성면장을 지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금왕읍사무소에 걸려있는 역대면장의 사진 중에서 초대 면장으로 표시돼 있는 조동환씨와 공교롭게도 한자가 동일합니다. 다만 일제강점기 시절 음성면장을 지낸 사람과 금왕면 초대면장으로 기록된 인물이 동일인물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진천군도 일제강점기 시절 읍‧면장들의 정보가 부존재하다고 답변했습니다.

 

조선총독부 면장의 비석에는 일제 연호가 새겨진 부분을 알수 없게 쪼아져 있거나 시멘트로 덧칠해 흔적을 지웠다. (왼쪽 일제강점기 시절 금왕면장 김학성, 가운데 덕산면장 이계창, 오른쪽  금왕면장 이준성의 공덕비)

한편 금왕읍사무소와 덕산면 사무소에 보전돼 있는 일제강점기 면장 공덕비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비석 설립년도를 표시하는 부분이 쪼개지거나 시멘트로 덧칠돼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지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감추고 싶었던 부분이었나 봅니다.

 

<조선총독부및소속관서직원록>

 

김낙성(金樂性)

1920년 음성군 금왕면장

1921년 음성군 금왕면장

1922년 음성군 금왕면장

1923년 음성군 금왕면장

 

이준성(李竣成, 1890~)

1931년 음성군 금왕면장

1932년 음성군 금왕면장

1933년 음성군 금왕면장

1935년 음성군 금왕면장

1936년 음성군 금왕면장

1937년 음성군 금왕면장

 

이계창(李啓昌)

1919년 진천군 덕산면장

1920년 진천군 덕산면장

1921년 진천군 덕산면장

1922년 진천군 덕산면장

1923년 진천군 덕산면장

1924년 진천군 덕산면장

1925년 진천군 덕산면장

1926년 진천군 덕산면장

1927년 진천군 덕산면장

1928년 진천군 덕산면장

1929년 진천군 덕산면장

김남균 기자  spartakooks@hanmail.net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남균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관련기사 icon종7위 고등관인데…최고위급 일제간부 기념비인지 조차 몰라 icon친일파와 의병의 공존…충주읍성의 자기모순 icon위안부 공출 강제동원…일제면장이 대한민국의 면장입니까? icon괴산문광면장 송재욱은 미원면 3 1운동 총 쏴 죽인 헌병보조원 icon옥천갑부 오윤묵 집터 명치천황 추모비는 누가 만들었을까? icon“나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정지용 생가 앞 돌다리는 황국신민서사비 icon음성군민 혈세로 보전되는 ‘일급친일’ 이무영 생가 icon영동읍청루! 기생까지 동원해 친일한 악질경찰 최지환을 추모 icon친일이면 어떠랴!…충북대학교에 세워진 김학응 송공비 icon친일군수는 일장기연못의 정자를 왜 ‘인풍정’이라고 했을까? icon네모난 인공연못에 둥그런 섬…음성읍 일장기 연못의 비밀 icon충북도지사 옛관사에 남은 친일잔재…명치(明治)연호에 다다미방까지 icon울고넘는 박달재에 새겨진 반야월 노래비와 친일행적안내판 icon독립운동가가 참살하겠다고 했던 이완용친척 이해용 공덕비 icon여전히 추모되는 신념에 찬 친일파, ‘색마(충북도)지사’ 박중양 icon"친일거물 이범익, 비석이 먼지가루 될때까지 잊지말자" icon사인암에 새겨진 친일…네 이름 함부로 새기지 마라 icon땅속에 묻혀있다 다시 세워진 일왕등극 기념비석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