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같은 정의, 강같은 진실

중년 남성들은 이루지 못한 꿈 하나를 가슴에 묻고 산다. 나를 믿고 의지하는 가족들이 있기에 차마 입 밖으로 꺼내보지도 못했던 젊은 시절의 꿈, 그런 면에서 조영수(48) 씨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청주대성고 음악교사 조영수 씨는 30대 후반에 어릴 적 꿈을 실현했다. 바로 트로트 가수다. 나훈아 키드였던 조 씨는 완고한 아버지의 반대로 꿈을 접어야했다. 그래도 노래를 하고 싶었던 조 씨는 선생님이 되겠다는 약속을 하고 음악교육과 진학을 허락받았다.

노래를 좇던 소년, 음악교사가 되다

바리톤이었던 조 씨는 이제는 거목이 된 연광철 서울대 교수와 함께 청주대 음악교육과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연광철 교수에 견줄 만큼 가능성을 보였지만 9남매의 둘째로 태어난 그는 유학길에 오를 수 없었다. 음악교사로 진로를 정한 그는 졸업 후 청주시립합창단원과 대전시립합창단원을 거쳐 음악교사가 됐다. 그리고 가정을 꾸렸고, 아내의 남편, 아이들의 아빠로 평범한 인생을 살아갔다.

“어느 날 TV에 난영가요제 출신 가수들을 소개하는 내용이 방영됐다. 무언가에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가슴속에 봉인돼 더 이상 열릴 것 같지 않던 오랜 꿈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2002년 조 씨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진행하던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을 결심했다. 일 장원, 월 장원, 기 장원을 거쳐 연말 결선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그는 가수인증서를 받아들 수 있었다. 꿈을 이룬 것이다. 이후 각종 방송과 지역 행사에 어엿한 가수로 초대받았다. 10년의 세월동안 3장의 정규앨범도 발표했다.

“가끔은 ‘유명 가수가 된다면…’ 하는 상상을 한다. 돈을 많이 벌고, 뭐 그런 상상이 아니라 제자들과 수업시간이 더 재밌어질 것 같다는….” 말끝을 흐린 조 씨는 배시시 웃어보였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모양이다.

“2003년 무심천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청주시가 주최하는 대형 행사가 있었다. 가수가 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큰 무대는 처음이었다. 그 때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젊은 가수들도 함께 무대에 섰다. 대성여상에 근무할 땐데, 제자들도 아이돌 가수들을 보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강타가 무대에 섰고, 다음 순서가 나였다. 다음 노래를 위해 무대 위로 올라가는데 강타가 내게 인사를 했고, 가볍게 스쳐지나갔다. 다음날 학교에서 스타가 됐다”고 기분 좋은 추억을 떠올렸다.

그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이 ‘선생님가수’다. 어릴 적 꿈을 이뤘지만, 교사를 천직으로 알고 생활한 지 20년이 된 그에게 선생님가수라는 호칭은 훈장과도 같다. 조 씨는 “앞으로도 주어진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가수활동은 해나갈 계획이다. 하지만 무대보다는 강단이 우선이다. 아이들에게 음악을 더 친숙하고, 흥미롭게 가르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훈장과도 같은 호칭 ‘선생님가수’

지천명을 바라보는 조 씨가 얻은 것은 또 있다. 바로 아버지의 인정이다. “당시에는 가수라는 직업을 경시했다. 지방직 공무원 출신인 아버지에게 딴따라 자식은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성악조차도 교사가 돼야 한다는 전제로 허락해 주셨던 아버지가 요즘은 노래하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신다. 가끔 아버지가 계신 옥천에 가면 나를 대동하고 나가고 싶어 하신다.”

조 씨는 재능기부도 10년째 이어가고 있다. 매주 수요일 청주대성고 강당에서 진행하는 ‘노래교실’이 그것이다. 대성중 재직 시절부터 10년째 이어가고 있는 노래교실이다. 처음에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했다.

트로트라는 장르 때문에 반응이 뜨겁지는 않았다. 대상을 지역주민으로 바꾼 뒤로 노래교실 수강생은 150명으로 늘었다. 수강생 연령대도 50~60대로 높아졌다. 그는 “호응이 정말 뜨겁다. 노래교실에서는 유명 스타가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조 씨는 교사와 교육청 공무원 50여명으로 구성된 ‘청풍명월교육사랑합창단’ 활동도 하고 있다. 합창단에서는 베이스를 맡고 있다. 합창단 외에도 여전히 성악가 조영수를 찾는 무대에도 심심찮게 서고 있다.
“오랫동안 트로트와 성악을 병행하다보니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다. 어느 무대에서든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고, 이 순간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오옥균 기자  oog99@cb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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