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은 ‘레고 천국’이었다. 나무에 레고로 만든 집을 걸어놓았고, 전시장을 빙 둘러 레고로 얇은 선을 둘렀다. 이 건 청주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상당산성’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 많은 재료 중에서 레고가 주인공이었다. 레고가 전시장에 놓이자 작품이 됐다. 미술창작스튜디오 주변 나무에도 레고 집을 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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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고 위에 작가가 누웠다. 장난감 레고는 전시장에서 작품이 됐다./ 육성준 기자 eyeman@cbinews.co.kr | ||
작품을 만든 이는 한국나이로 올해 51세가 된 문재원 씨. 얼핏 보면 20대로 보일만큼 동안이다. 뉴요커답게 패션도 예사롭지 않다. 문 씨는 뉴욕에서 지난 가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 왔다.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는 뉴욕의 ‘RU재단’과 작가교류사업을 해마다 벌이고 있다. 문 씨는 2번째 교류작가로 와서 3개월 간 머물고 있다.
문 씨는 레고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그가 처음 레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6년이다. 레고로 스프를 만들고, 일정한 원을 그리는 과녁을 형상화했다. 당시 그가 레고에서 읽어낸 것은 새로운 형태였다. 그러다가 건축적인 요소를 레고에 삽입했다. 지루한 레고블럭에 문을 달아주어, 물리적으로 공간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착각을 일으켰다.
“기계적이고 수학적인 요소, 그리고 누구나 쉽게 재조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인의 삶의 모습을 봤어요.”그는 레고로 빌딩을 만들기도 했고, 서랍장, 런치박스 등을 만들었다. 대량생산과 수시로 이동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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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거리에 작품을 설치할 때는 눈치를 많이 봤어요. 작업이 완성되기 까지는 저의 의도를 모르니까 조심스러웠죠. 그런데 만들어놓은 후 형태가 바뀌는 것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어요. 시민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고, 자연스럽게 사라져갔죠.”
상명여대에서 조소로 학위를 받은 후 20대에 유학을 간 그는 뉴욕 Pratt에서 석사를 받았다. 뉴욕, 마드리드, 도쿄에서 전시회를 열었지만 한국을 떠난 뒤에는 한번도 다시 고국에 올 기회가 없었다. 이번에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교류작가로 선정돼 한국에 오면서 그는 레고작업을 알리게 됐고, 많은 피드백을 받았다. 청주에 오기 전 이태원과 용산구청 입구, 그랜드 하얏트호텔 아이스링크장에 레고트리하우스를 설치했다.
“공공미술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어려워해요. 미술을 하자고 하면, 그림을 못 그린다고 대답부터 해요. 하지만 레고를 쥐어주면 표정이 바뀌죠. 레고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누가 만들어도 다 작품이 될 수 있어요. 그런 점이 레고의 매력이에요.”
사실 전시장에선 작품을 만질 수 없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작품을 만져야 완성이 된다. 긴 줄로 이어진 ‘레고 상당산성’에 누구나 와서 작품을 만들고 덧붙이면 된다. 시민들이 직접 레고로 성을 쌓아올리면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전시는 1월 20일까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전시실에서 열린다.
전시장 중간에 레고가 듬뿍 쌓여 있으니 놀이터에 온 것만 같다. 레고를 만지작거리면 어릴 적 추억이 자동 재생된다. 레고 작업을 하면서 ‘레고코리아’로부터 일부 후원도 받았다는 문 씨. 한국에 오기 전 트렁크에 레고만 가득 싣고 왔다는 그.
이제 그는 레고만 있다면 전 세계 곳곳에 레고트리하우스를 건설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자연이 주는 색감에 형형색색 플라스틱이 주는 경쾌함이 있어요. 플라스틱이 갖고 있는 인공미와 기억 등이 어우러질 수 있는 작품이에요.”
박소영 기자 parksoyoung@cb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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