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같은 정의, 강같은 진실

이선영(39)씨는 지난 9월 21일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이하 충북참여연대)의 신임 사무처장이 됐다. 20년 넘게 송재봉 처장이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터라 신임 처장의 무게는 컸다. 결국 14년차 활동가 이선영 씨가 신임처장이 됐고,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에서 여성이 수장이 됐다는 것 자체가 이슈였다.

25살 충북참여연대에 첫 노크했다. 대학 운동권 생활을 한 후 1년 동안 학습지 교사를 하다, 시민활동가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막내 간사였던 그는 이제 1500명의 최대 회원을 자랑하는 충북의 대표 시민단체를 이끌게 된 것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나이 서른에 야구장에 가 프로야구를 관전하던 중 2루타가 터지는 것을 보는 순간 소설을 쓰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이처럼 인생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을 만나게 되고, 삶의 행로가 뒤바뀌기도 한다.

그에게도 사건이 있었다. 철학과 학생이었던 그가 소위 운동권이 된 것은 청주대 총학생회가 학교 측과 등록금 인상을 놓고 싸우는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보면서부터다. 당시 총학생회가 총장실을 점거했다는 이유로 쇠파이프를 들고 학생들을 무력 진압하는 모습이 여과 없이 나왔다. 그는 그 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이런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혼란스러웠죠.”

그동안 시민활동가로서 크고 작은 싸움에 피켓을 들었던 그가 가장 기억에 남는 싸움은 무엇일까. 그는 주저 없이 도내 화상경마장 설치를 막아낸 것을 꼽았다. 2004년 청원군은 화상경마장을 유치해 수익금을 창출하겠다고 나섰다.

또 최근에는 명암타워에서 화상경마장을 추진해 그 수익금을 지역사회에 공헌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처장은 “찬성하는 사람들은 화상경마장이 도내에 없다보니 멀리까지 가서 힘들게 경마를 하고 온다고 해요. 또 수익금을 지역사회에 공헌한다고 하지만 뒤집어 보면 말이 안 되죠. 멀리 가서도 하는데 청주에 있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경매에 빠져 시간과 돈을 탕진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 이웃이잖아요”라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도 화상경마장 저지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겁니다. 4번 정도 경마장 유치가 추진됐지만 그 때마다 피켓시위 및 서명운동, 시민사회 연대운동을 통해 막아 냈어요”라고 말했다.

또한 2007년에는 지역 국회의원을 찾아가 화상경마장 설치 저지 운동에 대해 설명했고, 당시 남상우 시장 시절 시장, 시의장, 경찰청장, 교육장 등이 모여 사행산업이 더 이상 시에 유치되지 못하도록 하는 시민사회협약을 맺기도 했다.

이 처장은 “이제 화상경마장을 누군가 하려고 하면 제보가 들어와요. 당시 여야 정치 성향없이 142개 단체가 함께 운동을 했기 때문에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봐요. 역시 연대가 가장 중요해요”라고 강조했다.

충북참여연대는 2001년 관으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400~500명이던 회원들을 3배가량 늘리는 것은 곧 충북참여연대 자립의 문제이기도 했다. “학습지 교사 할 때도 회원을 늘리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시민단체 활동가도 회원증모는 별 반 다를 바가 없더라고요. (웃음) 지금은 회원들이 입소문을 내서 오시는 분도 많아요. 대부분 과격한 단체, 반대만 하는 단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는 얘기가 가장 많아요.”

충북참여연대는 시민법률상담을 오랫동안 해왔다. 그래서인지 시민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충북참여연대가 도움을 준다는 생각이 널리 퍼진 것 같다고 했다. 요즘에는 16개의 각종 위원회와 함께 엄마들의 수다모임, 뿔난 합창단, 책 읽는 모임 ‘수도리’ 등 말랑말랑한 모임 등도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에는 음성지부가 문을 열었고, 올해는 진천 지부가 준비 중이다.

외연도 넓혀졌고, 운천동 시대를 마감하고 올 7월에는 우암동에 새 터를 잡았다. 이 처장은 “내후년에는 25주년이 돼요. 참여와 연대의 정신을 계승하고, 새로운 미래가치를 찾아 운동하고 싶어요. 여성의 감수성이 녹아있는 기획사업도 추진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일주일에 3~4번 저녁 회의가 잡혀져 있어서 두 아이 엄마로선 처장 자리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고 한다. 그는 “일과 육아 양립, 이게 시민단체 활동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아요”라며 크게 웃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cb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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