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같은 정의, 강같은 진실

책 제목이 거창하다. 영어의 바다에는 상어가 산다고. 대한민국에서 영어만큼 뜨거운 감자가 있을까. 원비가 샐러리맨 월급에 달하는 영어유치원이 성행하고, 조기유학에 원어민 과외까지. 그런데 그 넓은 영어시장에 ‘상어’가 산다고 꼬집는 이가 있다. 바로 최근 <영어의 바다에는 상어가 산다>(도서출판 형설라이프)를 펴낸 서원대 영어교육과 박진규(47)교수다.

사진/육성준 기자

그는 “우리말을 잘 구사해야 영어를 잘한다. 한국어를 잘하면 영어도 잘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명한 입시강사였고, 잘나가는 강남의 사립학교 영어교사였으며 또한 뒤늦은 미국유학에서 언어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터라 이러한 주장에 힘이 실린다.

책에서 밝히듯이 그 또한 두 아이를 조기유학을 보낸 경험이 있는 부모다. 박교수는 자신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학위공부를 하면서 현지 한글학교 교장을 맡아 조기유학으로 힘들어하는 다양한 사례를 접했다. 이 책에는 생생한 경험담이 실려 있어, 조기유학을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훌륭한 가이드가 되고 있다.

박교수는 “영어교육이 너무 부풀려져 있다. 영어교육을 일찍부터 하는 게 좋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러한 연구자료들은 많이 나와 있는데 부모들은 욕심 때문에 믿지 못한다.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있는 10살 무렵부터 영어를 접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의 다소 파격적인 주장 때문에 출판을 꺼리는 곳도 많았다. 제도권 교육을 벗어나자는 주장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에서 박사논문 또한 ‘한국 부모들의 영어병’에 대해 썼다. 논문을 단편소설 형태로 썼고, 단어 또한 일부러 2000단어를 넘기지 않았다. 당시 중학생인 딸에게 글을 읽어보라고 했고, 이해 못하는 단어가 나오면 다른 단어로 바꿨다.

“수능을 보려면 5000단어를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통상 일상에서 통용되는 단어는 2000단어를 넘지 않는다. 기본적인 단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고, 무턱대고 단어만 외우게 하는 것이 문제다.”

이 논문은 국제공인학술지(SSCI)에 실리기도 했다. 이 책은 논문을 독자들이 알기 쉽게 다가오도록 풀어썼다. 책 뒤에는 논문을 그대로 실어 이해를 돕는다.

박교수는 영재교육에도 남다른 비전을 갖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전무후무한 언어 영재 교육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비친다. 그는 귀국한 이후 순천향대학교와 모교인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재교육 강의를 꾸준히 해왔다.

박교수는 논어를 영어로 해석하고, 고전 콩쥐밭쥐 이야기를 수학과 비교해서 가르친다. 그의 언어영재 교육은 낯설지만 퍽이나 매력적이다. 가령 콩쥐엄마가 콩쥐에게 물동이를 채우라고 시킨 물의 양은 얼마이며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가 질문이다. 이는 콩쥐의 키와 물동이의 크기 등을 총체적으로 계산해야 답이 나온다. 춘향전에서 볼 수 있는 계급화는 무엇일까. 그는 신화와 고전, 성경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재료로 수학, 과학을 영어와 버무리며 가르친다.

이것이 바로 융합이고 통섭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커리큘럼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박교수의 독특한 삶의 이력도 한 몫 한다. 경북 예천 출신인 그는 전교생이 360명인 시골학교에서 최고 수재였다. 개교 이래 명문대에 간 것은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수학, 과학에 관심이 많았고 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하는 등 소위 날렸지만, 당시 이과 인원이 적다는 이유로 아예 이과 수업조차 받을 수 없었다. 독학으로 수학과 과학을 공부한 그는 또한 어려운 살림 때문에 대학에서 이공계열을 선택할 수 없었다. 당시 문과에서 이과로 진학할 경우 점수가 깎였기 때문이다. 그는 성적이 좋아 장학금 및 생활비까지 지원받게 됐는데 이를 포기하고 재수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어릴 적부터 한문을 익히고, 글쓰기를 유난히 좋아했던 터라 절충안으로 영어영문학과에 들어갔다. 이후에도 20대에 고시공부를 하다가 심장판막이 터져 죽었다 살아났고, 지난해에도 무리를 해 관상동맥이 파열되는 등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그래도 그는 늘 웃는다. “제 별명이 서원대 개그맨이에요. 열심히 살고, 노력하면 다 기회가 오더라고요.”

가르치는 것에는 도통한 그의 말대로 하면 과연 영어바다에서 ‘상어’를 피할 수 있을까. 적어도 상어에게 잡아먹히지 않는 비법은 알려준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cb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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