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같은 정의, 강같은 진실

소통의 수단은 다양하다. 언어를 기본으로 문자, 몸짓, 표정, 눈빛이 대표적이다. 침묵도 때론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된다.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한 부부가 있다. 이들 부부의 소통은 남다르다. 아내가 시를 쓰고 남편은 그 시를 서예로 옮긴다. 부부의 대화가 다른 이들에게 어떤 울림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알 수 없지만 설렌다. 박희선·이희영 부부시서전이 열린다. ‘點, 마침 그리고 시작’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되는 이번 부부시서전에 앞서 남편인 서예가 이희영씨(40)를 청주시 금천동 그의 공방에서 만났다.

▲ 이희영씨는 부인 박희선씨와 함께 여는 시서전을 앞두고 있다. 시서전을 앞두고 희영씨가 빗자루 같이 생긴 붓을 어깨에 메고 포즈를 취했다./ 사진=육성준 기자

서글서글한 인상의 희영씨는 재주가 많다. 본업인 서예와 더불어 한지제작, 켈리그래피, 도장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재주가 많지만 역시 본업은 서예다. 희영씨는 “서예는 평생 가져가야 하는 것”이라며 “서예는 마음공부와 같다”고 답하기도 했다.

한지작업실이 있는 고향 인근 땅에서는 농사도 짓는다.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농부로 착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최근 출하한 무가 제 가격을 받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촌부의 모습이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마을반장자리를 제의받기도 했다. 무 출하 후 마을 이장과 양껏 마시지 못한 막걸리 생각에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없다’는 것의 그의 말이다. 유별난 이씨의 막걸리 사랑, 인터뷰 역시 의도하지 않게 취중으로 진행됐다. 첫인사 후 그가 내어준 고연잎차의 향이 가시기 전 서로 막걸리를 한 순배 씩 주고받으며 그렇게 두서없는 인터뷰가 시작됐다.

대개 ‘서예가의 손은 곱상하다’는 희영씨의 말과는 다르게 그의 손은 거칠다. 도장작업으로 다치길 수어 번 다시 새살이 돋기 전 한지를 만들며 얻게 된 사연 있는 손이다. 그가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희영씨는 “쪽 팔리지 말자”고 다짐하고는 한다. 희영씨는 “이 말은 무서운 말이다”라며 “또한 어려운 말”이라고 전했다. “사는 게 모험이다. 수정과 보완을 거쳐 일정한 지점에 다다른다. 시와 글도 마찬가지다. 접해보고 벽에 부딪혀보고 깨져봐야 좋은 시가 나온다”며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지를 직접 만들고 붓 제작을 의뢰할 때도 꼼꼼히 신경 쓰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희영씨는 부인 희선씨가 20대 초반부터 써왔던 시 중 20편을 선정, 일부를 발췌하거나 또는 온전히 옮겨 그의 표현방식으로 나타냈다. 시가 단독으로 전시회장에 걸리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이번 경우도 시 전시회가 아닌 시서전으로 단순히 시를 옮긴 것이 아닌 시를 서예에 맞게 재구성해야 하기에 작업은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부부간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희선씨가 쓴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느낌을 온전히 서예로 옮기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희영씨는 “이번 작업을 통해 부인이 시를 쓸 때 과연 무슨 생각을 가졌을지, 어떠한 느낌이었는지를 곰곰이 되짚어보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한시의 경우 그 시대적 상황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시 역시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제대로 뽑을 수 없다고 희영씨는 말했다.

부부는 2006년 결혼했다. “우리답게 하자”는 것이 부부의 결혼약속이었다. 향교에서 전통혼례로 식을 치렀고 4시간 30분이 소요됐다. 혼례음악 역시 연주자 9명을 초빙했다. 라이브 연주였던 셈이다. 덕분에 떠들썩한 결혼식이 됐다. 국수값만 1300만원이 나왔을 정도로 사람이 몰렸다.

웨딩카를 장식해준다던 친구들은 그를 닮아 술사랑이 지나쳐 인사불성이 됐다. ‘결혼 두 번은 절대 못하겠다’고 느꼈을 만큼 정신이 없었다고 희영씨는 전했다. 그러면서도 희영씨는 아내 이야기에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부부의 고향은 청원과 보은이지만 실상 거리는 5분거리로 고개 하나 차이에 불과하다. 만나게 된 후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어쩌면 예정된 만남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씨는 “부인이 시집온 게 아니라 내가 장가갔다.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다 맞춰가는 것 아니겠냐”며 결혼 후 5년 동안 세아이를 낳으며 작품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보이기도 했다. 박희선·이희영 부부의 시서전은 한국공예관 2층에서 23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열린다.

염귀홍 기자  yoem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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