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같은 정의, 강같은 진실

최근 선거관리위원회에 ‘친반연대(親潘連帶)’라는 이름으로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신고서가 접수됐다. 여기에서 ‘반(潘)’은 2006년 10월 취임해서 재임(再任)으로 재임(在任) 중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일컫는 것이다. 친반연대는 발기취지문에서 “세계의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유엔사무총장을 한국인이 맡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행운이며 아시아권을 벗어나 세계의 지도국가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도 그동안 ‘세계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반 총장은 당사자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반 총장은 신뢰도와 선호도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다. 내년 12월에 임기가 끝나고, 그도 피선거권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니 당연히 선출직에 나설 수도 있다.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일이다. 유권자들은 정치물이 덜 든 그가 오직 국민만 생각하는 정치를 해주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특히 충북인들은 음성에서 태어나 충주고를 나온 반 총장에 더 각별한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반기문 총장의 대선출마를 비현실적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3대 불가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전의 대통령들에 비해 ‘권력의지’가 약하고 ‘정치세력화’에 난관이 예상되며 목표를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명예실추’가 우려된다는 얘기다. 세계 대통령으로 칭송 받는 그도 정치는 ‘초짜’다. 과거에도 조순, 고건, 정운찬 등 관료 출신들이 유력한 대선주자로 거론됐지만 여야 어디로부터도 합의 추대 등 쉬운 길을 보장받지 못했다.

반 총장은 한때 야당의 대선후보군으로 회자됐으나 최근에는 여당, 그것도 여당 내 ‘친박’과 연대하는 카드가 설득력 있게 거론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떠난 대통령의 복심(腹心)이 ‘반(潘)’을 향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계일각에서는 ‘반기문 대통령, 친박계 총리’라는 ‘이원집정부제’까지 들먹이고 있다. 지난 9월 유엔에 간 박 대통령이 반 총장과 7차례 직·간접 회동을 가진 점,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에 두 사람이 함께 참석한 것도 심상치 않은 징후다.

‘친반연대’는 이름에서부터 2008년 한나라당 친박계 공천탈락자들로 구성된 ‘친박(親朴)연대’를 떠올리게 한다. 친박연대는 18대 총선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창당했음에도, 오직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함께 찍은 사진을 내걸어서 서청원, 조원진, 김을동 등 무려 14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학력 및 경력위조, 특별당비 등의 문제로 비례대표 3명의 당선이 취소됐지만 모두 한나라당에 복당, 또는 입당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당시 한나라당을 탈당해 친박연대에 합류하지 않은 김무성 현 대표가 무소속임에도 ‘친박무소속연대’라며 치맛자락을 붙들고 당선됐다는 것이다.

친반연대와 친박연대가 아직까지 다른 것은 이들을 바라보는 맹주의 시선일 것이다. 현재로선 친반연대에 대한 반 총장의 속내를 알 수는 없다. 다만 반기문 총장의 측근은 친반연대 주도세력들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잘라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반해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살아서 돌아오라”고 당부했고 그들은 실제로 사지에서 생환해 지금도 살아있는 권력을 누리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유력 정치인의 이름 석 자와 사진 한 장에 기대려는 정치풍토와 그것이 먹히는 정치구조다. 상황은 이렇다. 대통령은 아무런 잘못이 없고, 문제가 있다면 모두 그동안 쌓여온 적폐(積弊)일 뿐이다. 쿠데타와 유신, 군부독재를 비판적으로 보는 국사교과서는 잘못 됐고, 그래서 국민들이 ‘비정상적인 혼’을 갖게 됐다. 이런 신념을 갖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을 만들어낸 것은 대한민국의 낮디 낮은 정치 민도(民度)다.

충청리뷰  043sim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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