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같은 정의, 강같은 진실

한덕현 충청리뷰 발행인

결국 6.13 지방선거의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아니 국민여론과 딱 맞아떨어졌다.

민주당 압승이라고 하지만 이 말은 틀렸다. 국민이 쟁취한 당연한 승리다. 자유한국당 참패라는 말도 사실과 다르다. 자한당이 참패한 게 아니라 그 당을 이끌었던 일당들이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나라의 미래에 이롭지 못한 세력들을 국민들은 처절하리만큼 응징했다. 그래서 통쾌하다.

이 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2년 후 총선에선 또 다른 응징이 기다린다. 이미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향해서다. 대통령과 당의 지지도에 도취해 깜도 안 되는 후보, 말도 안 되는 공천을 남발하고도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던 그들의 오만함을 국민들은 결코 잊지 않는다. 그들이 살아남아 지금 승리의 찬가를 부를 수 있는 건 딱 한가지 이유 때문이다. 구태와 수구로 상징되는 썩은 정치, 그 더러운 유산의 척결이 더 시급했기에 민주당은 일단 화를 면한 것 뿐이다.

유권자의 선택은 참으로 현명했다. 적폐청산에 이어 한반도에 평화의 씨를 심고있는 대통령을 위해 맘껏 여당을 지지하면서도 끝까지 민주주의 신념은 변질시키지 않았다. 이미 식물 정당이 된 자한당을 대체할 다른 견제세력을 찾는 데도 소홀하지 않은 것이다. 정당투표에서 정의당의 선전이 이를 입증한다.

남북 그리고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저들이 그토록 저주를 퍼부었지만 결코 현혹되지 않았다. 선거 때마다 전쟁의 공포를 내세우고 이에 기생해 득표력을 올리던 그들이 이번에도 끈질기게 똑같은 선거전을 구사했지만 국민들은 더 이상 속지 않았다. 야당 대표는 선거 때 가장 활약이 돋보이는 게 정치판의 관례였는데 홍준표는 선거전 내내 “표 떨어진다”며 자당 후보에게조차 환영받지 못했다.

여당 압승이라는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는 공교롭게도 홍준표를 빼고선 진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가 야당에 대한 국민반발을 결정적으로 키웠고 이 것이 끝까지 선거전의 분위기를 견인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홍준표는 당최 상종하지 못할 사람으로 취급받으면서도 선거판에서는 지대한 영향을 미친 꼴이 됐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그의 ‘쇼’ 발언과 저주스런 악담을 지적하지만 정작 국민들이 자한당에 등을 돌린 이유는 꼭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유권자들은 선거기간 중에 나타난, 이른바 홍준표 신드롬(?)이라는 특정 현상에만 염증을 느낀 게 아니라 좀 더 근원적인, 우리나라의 보수라는 세력들이 선거 때마다 저질러온 반 인륜의 ‘악행’을 더 증오했다. 국민들에게 적대감을 심어주는 행위다.

그들은 세기적인 남북, 북미 대화를 대하면서도 세대를 가르고 흑백의 이념을 들이대며 국민들에게 적대감을 안기고자 발버둥쳤다. 국민 사이의 정서적인 괴리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닌지라 사석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치얘기가 금기시된 게 현실이지만 최근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옥신각신 다투는 차원이 아니라 아예 서로간 극도의 증오를 폭발시킨다. 이런 현상만 본다면 보수의 선거전략은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세대간 이간질은 남북정상의 도보다리 회담을 목격한 나이든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면서 많이 희석됐고, 이념의 이간질은 이 땅에 더 이상 전쟁은 안 된다는 국민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역시 힘을 잃었다. 그릇된 정치세력에 현혹돼 국민 사이의 적대감을 설파하던 우리사회의 범부, 시쳇말로 꼴통들 역시 요즘은 주변으로부터 예전과는 다르게 눈총을 받는다. 바로 이 것이 선거를 통해 구체화됐고, 자유한국당 참패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만약 홍준표와 자한당이 남북화해에 사사건건 어깃장을 놓지 말고 인정할 건 인정하면서 처음부터 경제문제에 천착했다면 상황은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 국가경제가 많은 난맥상에 빠졌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북한타령을 할 게 아니라 현실의 실물경제를 진정성있게 집중홍보했다면 자한당이 그렇게 폭삭 망하지는 않았다.
 

요즘 최고로 핫한 역사학자 전우용도 이 점을 분명히 했다. 국민들에게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적대감을 심어주는 게 우리나라 보수정치의 가장 큰 죄악이라고 일갈했다. 그의 지적은 백번이고도 옳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모든 비극은 이것으로부터 비롯됐다. 몰가치의 정치로 인한 국가폭력을 말하는 것이다.

빨갱이라고 분칠해서 때려죽이고 좌파라고 몰아서 잡아들였다. 그 때마다 국민들은 까닭도 모른채 서로 원수가 되어 살육을 벌였고 부녀자와 어린 아이는 이유도 모른채 도륙을 당했다. 전쟁이 아닌 이념의 이간질로 자기 국민을 우리나라처럼 많이 죽인 나라는 세계사에도 없다. 이를 빌미삼아 그들은 국가권력을 향유했고 지금도 대를 이어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바로 이 것이 대한민국의 일탈된 보수의 뿌리이고 그 DNA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다시 전열을 정비하려다가 국민들로부터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 언론들은 준엄한 심판이 내려졌다고 하나같이 말한다.

그렇다면 그 준엄한 심판의 대상을 분명히 적시할 필요가 있다. 우선 홍준표와 그 아류 정치인들이다.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비판이 아닌 저주를 퍼부은 이들은 이제 정치무대에서 사라지라는 것이다. 두 개의 정상회담이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3대세습 독재자 김정은은 자신의 목숨과 체제를 담보하는 핵무기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렇더라도 또 한번의 전쟁을 막으려는 노력보다는 또 한번의 권력욕으로 무장해 북한팔이를 하며 국민들에게 적대감을 부추는 세력들은 더 이상 필요없다. 이들이 존재하는 한 반문명의 대한민국식 국가폭력은 다시 반복된다.

심판의 대상은 또 있다. 특권의식을 버리겠다고 그토록 약속하고도 여전히 국민 위에 군림하는 국회의원들이다. 그들의 약속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도둑놈을 섬기는 게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 도둑은 그래도 기본적인 양심은 갖고 산다.

바로 어제까지 길바닥에서 허리를 굽신거리던 후보들이 당선과 동시에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 왜 우리가 정치와 정치인을 불신하는지 그 이유를 실감하고도 남을 것이다. 준엄한 심판은 아직 안 끝났다.

충청리뷰  043simin@hanmail.net

<저작권자 © 충북인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